한글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한글의 확장성을 연구하는 한글누리연구소 김주원 소장
재단법인 한글누리 산하기관 ‘한글누리연구소’에서는 세계의 다양한 언어에 대한 한글 기반 표기체계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한글학회 회장이자 한글누리연구소의 소장으로서 ‘한글 기반 외국어 표기’를 연구하고
‘외국어 표기법 권장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김주원 소장을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주원 소장님. 먼저, 재단법인 한글누리(이하 ‘한글누리’)와 한글누리연구소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재단법인 한글누리는 세계의 다양한 언어에 대한 한글 기반 표기체계를 연구하고 그 보급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재단입니다. 현재 한국어 표기에만 한정적으로 한글을 사용하고 있기에 한글의 사용
범위를 넓히려는 목적에서 시작됐습니다. 한글누리는 한글과 문자학을 연구하는 전문 연구소인 ‘한글누리연구소’를 산하기관으로 두고 있습니다. 한글누리연구소는 소장인 저와 2명의 박사 연구원이 포함된 3명의
인원으로 2022년 2월 7일부터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한글의 과학성을 바탕으로 현행 한글에 자모나 표기 규칙을 조금 더 추가하고 확장하면 여러 언어를 표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한국인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그러한 믿음과
기대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여러 외국어에 대한 한글 표기법을 제안하는 움직임 역시 꾸준히 있었고요. 그러나 학계에서 문자학은 전체 언어학의 영역에서 중요성을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는 주변적
하위 분야이기 때문에 ‘한글을 이용한 외국어 표기법’이라는 주제는 전문 연구자들의 관심 영역 바깥에 있었습니다.
이런 학계의 분위기 속에서 한글누리연구소는 조금 더 학술적으로 튼튼한 기반 위에서 한글이 과연 라틴 문자나 키릴 문자처럼 여러 언어에 널리 사용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적용에 어떤 문제점이 있고 과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있는지에 대한 본격적이고 전문적인 연구를 해 보고자 하는 연구기관입니다. 한글누리연구소의 주된 활동으로는 ▲ 훈민정음 및 한글 역사 연구 ▲ 기존의 한글 기반 외국어 표기법
연구 자료 수집과 정리 ▲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글로 자신의 언어 표기하기 행사(한글 페스타) 운영 ▲ 한글 기반 외국어 표기를 위한 자체 연구 및 공동 연구 등이 있습니다.
‘한글누리연구소’ 사업을 설명하는 김주원 소장
소장님께서는 창립 116년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한글학회의 회장이시기도 합니다. 또,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명예교수로서 다양한 연구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언어학자로서 한국어의 어떤 분야에 특히
관심이 많으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역사언어학자로서 한국어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한국어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한국어와 계통적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알타이언어를 연구해야 하는데요. 박사학위 논문으로 “만주퉁구스제어의
모음조화 연구”를 썼는데 놀랍게도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오는 “설축(舌縮)”이라는 아직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용어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 저의 연구는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고 그것이 또한 한글에 관한 연구로 이어지게 됐죠. 『훈민정음(2013년)』이라는 교양서적에 이때의 연구 결과가 수록돼 있습니다. 그 이후 저는 훈민정음을 동아시아의 문자들과 비교하여
훈민정음의 우수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더불어 제가 연구한 내용을 더 많은 분들에게 알리기 위해 대중 강연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한글누리연구소는 한글을 세계인과 나누기 위한 첫 대외 사업으로 2023년부터 ‘한글 페스타’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글 페스타는 어떤 사업인지, 이 사업에서 얻은 의미 있는 성과는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한글 페스타’는 ‘세계인이 함께 쓰는 한글 영상 공모전’입니다. 외국인이 주어진 경연 항목을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그것을 한글(훈민정음)로 적어 유튜브에 게시한 영상으로 만들어서 응모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대회가 열린 올해에는 ▲ 1. ‘귀여운 아이’ 또는 자장가 노래 가사 한글로 쓰기 ▲ 2. 인류 탄생 또는 민족 탄생 이야기 한글로 쓰기 ▲ 3. 전문가 분야 : 당신 나라의 〈국가〉 한글로
쓰기를 경연 주제로 하여 지난 4월부터 공모를 시작해 8월 15일에 마감했습니다. 그 결과 240개 작품, 48개 나라, 41개 언어 사용자들이 응모해 왔습니다. 참여작의 상위 5개 언어를 나열하면
베트남어(35명), 아랍어(27명), 인도네시아어(26명), 스페인어(24명), 일본어(19명)이며, 한두 명씩 응모해 온 경우는 우르두어, 타갈로그어, 벵골어, 쿠르드어, 류큐어, 타밀어,
그리스어, 자바어, 헝가리어, 종카어(부탄), 루마니아어 등이 있었습니다.
‘한글 페스타’에 응모한 참가자들의 나라 48개국을 표기한 지도
한글 페스타 참가작들은 전반적으로 훈민정음을 이용해 자신의 언어를 정확하게 표기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 많습니다. 한글누리연구소는 한글 페스타를 통해 사람들이 음소문자인 한글이 자신들이 배우는
한국어뿐 아니라 여러 언어를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음을 알게 되고, 한글이 여러 가지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한국의 언어와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 표기법 체계를 제공할 수 있게 하고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의 언어 교육에 필요한 정확한 발음 표기를
제공함으로써 초기 언어 교육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사라져가는 언어(절멸위기 언어)의 표기를 통해 언어 다양성 유지에 도움을 줄 수 있고, 난문자(읽고 쓰기 어
려운 글자)를 쉽게 표기하여 문맹률을 낮출 수 있습니다. 종국에는 훈민정음(한글)이 어떤 언어이건 세종대왕의 창제 정신인 “쉬운 글자로 자신의 뜻을 정확하게 표기하는 수단”으로써 사용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왼쪽부터) 세계인이 함께 쓰는 한글 영상 공모전, ‘한글 페스타 2024’ 공식 포스터와 ‘한글 페스타 2023’ 으뜸상 수상작
한글 페스타 외에 또 주요하게 추진하고 있는 한글누리연구소의 사업이나 연구 활동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한글누리연구소에서는 자체적인 표기법 연구를 위해 2024년 4월부터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대학원생들을 주축으로 한 ‘문자연구회’라는 모임을 출범시켜 다양한 언어에 대한 한글 표기의 가능성과 문제점을
검토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연구소 밖의 인력을 포함하는 연구 모임을 출범한 이유는, 기존의 소수의 연구원들만으로는 음운론적 분석과 검토를 통해 개별 언어의 한글 표기법을 검증하는 작업을 할 때
다룰 수 있는 언어의 절대적인 개수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음운론에 대한 소양을 갖춘 연구원이 많아지면 표기법을 보다 창의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검토할 수 있기에 연구 모임을 만들게 됐습니다.
현재 문자연구회는 한글누리연구소의 연구원을 제외하고 대학원생 4명과 학부생 1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2주에 1회 정도 온라인상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는데, 회원들이 각각 담당한 언어에 대한 표기법
시안을 발표하고 상호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이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평균적으로 2주에 4-5개 언어들에 대한 표기법이 제안되고 검토되고 있습니다.
최근 한글누리는 한국 대학(원)에서 한국언어문화학,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는 세종학당 학습자 두 명을 ‘한글누리 장학생’으로 선정했습니다. 세종학당 학습자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이유와 장학금을
받은 두 학생이 향후 어떤 인재로 성장하시길 기대하시나요?
현재는 많이 지원해 드리지 못해 말씀드리기 부끄럽네요. 한국에 와서 한국어문학을 전공하려는 학생들 중에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시작하게 됐습니다. 희망자가 많아서 지원자 중에 한국어를
잘하는 학생을 뽑았어요. 그들이 앞으로 한국어문학 분야에서 남에게 도움을 주는 인재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한류의 확산과 더불어 외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어 학습에 대한 관심도 뜨겁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젊은 층의 신조어와 줄임말의 남용으로 한글의 아름다움이 훼손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특히,
외국인들이 이러한 신조어부터 배우는 경우(예: 개=댕댕이 등)도 있는데, 소장님께서는 이와 같은 현상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우선 한국어와 한글은 서로 다른 것이기 때문에 특정 유형의 단어들이 자주 쓰인다고 해서 한글의 아름다움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려면 한국어 사용 환경에 자주,
그리고 많이 접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줄임말도 배우고 신조어나 비속어도 배우게 되겠죠. 그런 말을 배울 때 그런 말을 쓰는 환경도 자연히 배우게 되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서
한국어를 잘못 배울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마구 쓰거나 자주 쓰는 것은 피해야겠지요. ‘댕댕이’ 같은 것은 한글 글자의 특성에서 기인한 것인데 이런 것은 개수도 많지 않고, 한글에
이러한 유희적인 요소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창립 2년을 맞이한 한글누리연구소의 궁극적인 비전과 목표는 무엇인가요? 앞으로의 계획 또는 방향성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세종대왕은 하고 싶은 말을 글자로 제대로 적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자를 창제했습니다. 조선 초기의 한글학자인 정인지는 그 훈민정음 글자로 모든 소리를 다 적을 수 있다고
했고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만, 한글은 음소문자 즉 자음과 모음이 갖춰져 있는 문자이므로, 다른 언어의 음을 적을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류가 전 세계에 널리 퍼지면서 한국어와 한글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습니다. 한글은 배우기가 쉬울 뿐 아니라, 글자 모양의 독특함과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한글누리연구소는 다소 국수적이고 문화 침략적인 ‘한글 세계화’라는 용어대신 ‘한글 기반 외국어 표기’라는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글누리연구소는 한글의 문자적 특성을 더 깊이 이해하고 연구하여 세계의 여러 언어를 표기하는 ‘외국어 표기법 권장안’을 만들 계획입니다. 이러한 한글 표기는 외국어를 정확하게 배우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한글(훈민정음)로 절멸 위기에 처한 소수민족의 언어뿐만 아니라 무문자 언어, 난문자 언어 등을 적을 수 있게 하고, 세계인이 즐겨 쓰는 글자가 되도록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세종대왕의 뜻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