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발전 유공자’ 대통령 표창 수상
포르투갈 한국어 교육의 선구자,
리스본 세종학당 교원 강병구 교수
지난 10월 9일, 한글날을 기념해 열린 578돌 한글날 경축식에서 리스본 세종학당 교원 강병구 교수가 ‘한글발전 유공자’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았습니다. 한글발전 유공자는 한글의 보급과 발전에
이바지한 공이 매우 큰 개인이나 단체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수여하는 상입니다. 현지 대학 내 최초로 한국학 강좌를 개설하고, 리스본 세종학당 신설을 주도하는 등 포르투갈 내 한국어 교육을 선도한 강병구
교수를 만났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월간똑똑❭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교육자로서 30여 년간 한국어 보급에 힘써 온 강병구입니다. 포르투갈과의 인연은 1984년부터 시작됐어요. 당시 저는 한국외국어대학교 포르투갈어과를 졸업하고
포르투갈 칼로우스트 굴뱅키안 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포르투갈에 유학을 왔습니다. 그 이후 1986년 1월부터 3년간 한글학교의 교사로 봉사하고, 1999년부터 2003년까지는 한인회장으로서 당연직인
교장으로 재직했습니다. 1988년에는 포르투갈 최초로 신리스본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학(NOVA FCSH)에 한국학(한국어·한국문화) 과정을 개설하여 25년 동안 운영했는데요. 2013년 같은 대학에
리스본 세종학당을 개원하고, 지금까지 운영요원 겸 현지교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30여 년 전 포르투갈에 정착해 한국어 교육을 시작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나 동기가 있었나요? 그 당시 1980년대에는 포르투갈에 한국어와 한국문화가 알려지기 전이었는데, 신리스본대학교에 최초로
한국어·한국문화 과정을 개설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는 1986년 하반기에 신리스본대학 대학원의 서양사(지리상의 발견과 포르투갈 영토 확장의 역사) 과정에 진학했는데, 그때 교수님 중 한 분이 대학 내 동양연구소 소장이셨습니다. 당시 동양연구소에는
중국학 과정과 일본학 과정은 이미 개설돼 대학 내 선택과목으로 운영되고 있었지만, 한국학 과정은 없었죠. 그런데 당시는 88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포르투갈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교수님께서 한국어·한국문화 과정을 개설하자고 하셨고, 그 과정을 제가 맡아서 하면 어떻겠냐고 권유하셨어요. 그렇게 교수님의 권유와 도움으로 한국학 과정을 개설해서
1988년부터 대학 내 선택과목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저도 한국어 교육을 시작하게 됐고요.
1993년 한국어 수업 시간에 강의하는 강병구 교수의 모습
교수님께서는 포르투갈에서 30년 넘게 한국어 교육의 외길을 걸어오시면서 천 명이 넘는 제자들을 양성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교육자로서 교수님이 강조하는 한국어 교육 철학이나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한국어 교육의 주된 목적은 수강생이 한국어를 잘하도록 하는 것이지만 한국어 학습을 통해 한국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하고 한국에 대해 더 잘 알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최대한
한국어 수업 내용과 관련이 있는 역사, 문화, 전통, 관습, 시사문제 등에 대해 설명하고,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하여 수강생이 직접 우리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몸소 체험하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2013년에는 교수님이 신리스본대학교 안에 리스본 세종학당 신설도 주도하시면서 그때부터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한국학 수업을 진행하셨다고 들었습니다. 26명의 수강생으로 시작한 리스본 세종학당은 현재
10배가 넘는 학생들과 함께하고 있는데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리스본 세종학당의 운영요원이자 교원으로서 경험하신 도전이나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리스본 세종학당은 2013년에 4개 반, 26명의 수강생으로 시작해 현재는 27개 반에서 291명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교원도 개원 당시 1명에서 현지교원 3명과 파견교원 3명으로 늘어 총
6명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리스본 세종학당이 성장함에 따라 문화행사도 더 다양해지고 규모가 커졌는데요. 특히 2023년 10월 6일부터 8일까지 진행된 개원 10주년 기념행사에는 20여 개의 프로그램에
걸쳐 1,000명 이상이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리스본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운 많은 수강생이 정부초청장학생, 대학 장학생, 자비 유학생 등으로 한국에 유학을 갔습니다. 일부는 포르투갈로 돌아오지 않고 한국에서 취업해 일하고 있죠. 또한
리스본 세종학당에서 기초부터 한국어를 공부해 한국어능력시험 6급에 합격하고, 리스본 주재 한국 기관에 취업한 사례도 있습니다. 이런 수강생들의 성과들을 보면서 리스본 세종학당에서의 교육과 활동이 많은
수강생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제가 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에요.
(왼쪽 사진) 2014년 ‘퀴즈 온 코리아’에 참여한 제자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오른쪽 사진) 2017년 한국에서 유학 중이던 제자들과 서울에서 만남을 가진 강병구 교수(오른쪽 첫 번째)
지금까지 포르투갈에서 한국어 교육에 힘써 오신 결과, 올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수여하는 ‘한글발전 유공자’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이 표창이 교수님께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수상 소감과 함께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선, 무엇보다도 이 상을 받게 되어 매우 영광이며 제 노고를 인정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신리스본대학교는 초기에 한국학술진흥재단과 국제교류재단의 지원을 받았지만, 이후에는 재정적 지원 없이
오직 한국학 과정을 유지하겠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운영해 왔습니다. 이번 수상은 그동안의 어려움을 이겨낸 노력의 결실이라 더욱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포르투갈 내 한국어 교육과 한국학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난 10월 9일 열린 578돌 한글날 경축식에서 ‘한글발전 유공자’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은 강병구 교수의 모습
(사진 출처=KTV 국민방송 유튜브)
앞으로 리스본 세종학당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에서의 한국어 교육의 미래를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최근 포르투갈에서도 케이팝의 열기가 뜨겁습니다. 한류의 영향이 커질수록 한국어 과정의 수요도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하지만 인구 55만 명의 리스본을 제외한 다른 도시에는 아직 세종학당을
개원하거나 지방 대학에서 한국어 과정을 개설할 정도로 수요가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포르투갈 전 지역의 접근성을 위해 세종학당 온라인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리스본 세종학당은 포르투갈 전역,
특히 도서 지방과 포르투갈어권 아프리카 국가들의 학습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도입된 일부 온라인 과정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포르투갈 학생들을 위해 30년 넘게 한국학의 입지를 탄탄히 다져오신 교수님의 남은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포르투갈에서는 지금까지 학사 과정으로 한국학과가 개설된 적은 없습니다. 2004년 미뉴대학교에 동양학과가 개설되고, 2015년 구리스본대학교 문리대학에 아시아학과가 생겼으나 한국학을 전공하려는 학생과
교수의 부족으로 한국학 관련 과목은 별로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리스본 세종학당은 한국학에 관심이 있는 일부 수강생들의 요청에 따라 2022년 하반기부터 한국사 과정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는데요.
신리스본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학(NOVA FCSH)은 많은 수강생이 다니고 있는 리스본 세종학당의 운영기관이고, 1988년부터 한국학 과정을 선택과목으로 운영한 대학이기에 바라기는 이곳에서 학사 과정의
한국학과가 개설되면 좋겠습니다. 그날을 향해 저는 지금처럼 그래왔듯이 묵묵히 수업을 준비하며 포르투갈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해 한국어 교육을 할 생각입니다.